
흙의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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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9791173322815
출판사
김영사
저자명
유경수
출시일
2025년 08월 12일 출간
-
+
총 합계금액
0 원
제품상세 정보
ISBN | 9791173322815(1173322817) | ||
---|---|---|---|
쪽수 | 420 | ||
크기 | 148*211mm |
책소개
흙의 숨결을 느끼고 기록하는 생태학자가 들려주는, 지구 곳곳의 흙과 거기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계 각지의 여러 문화권에서 땅과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를 살피면서 오늘날 인류의 농경 문화, 토양생물학과 화학, 육지 경관의 변화, 기후 변화, 지속가능성의 문제 등을 다룬다. 무덤과 밭이 공존하는 우리나라 진도의 풍경, 히말라야 화전농의 지혜부터 극지에 ‘침입’한 지렁이의 맹렬한 활동까지, 하와이 화산섬의 흙이 태어나는 극적인 순간부터 세계 각지의 토양 침식현장까지, 부지런히 발로 뛰며 채집한 지구 곳곳 흙 속 놀라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저자소개
미네소타대학교(트윈시티스) 토양학 교수. 천문학을 하려면 물리학이 기본이라는 말에 연세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했다가 과학과 사회의 접점, 그리고 생태학에 눈을 떴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생태계 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 무렵에는 캘리포니아 구석구석을 그만큼 다녀본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별을 공부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이 먼길을 돌아 지구의 땅을 보는 토양학자의 삶으로 수렴했다. 삽을 쥐고 땅을 파고든 끝에 흙의 생성, 탄소 순환, 지형 발달과 생태학이 만나는 곳에서 중요한 연구를 내놓았다. 2013년 미국국립과학재단이 연구와 교육 분야에서 모범이 될 젊은 교수들에게 주는 가장 권위 있는 상 ‘CAREER’를 받았고, 현재 〈미국토양학회지〉의 부편집장을 맡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자연인 흙을 제대로 알리고자 개설한 학부강의 ‘세계 문화 속 땅과 사람들’로 2024년 우수 학부 강의상을 받았는데, 이 수업은 환경과학과 농학 전공자 외에도 예술 및 인문학도의 열띤 호응을 받고 있다. 2024년에는 독립영화인과 손을 잡고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흙의 숨: 진도 이야기〉에 직접 출연해 인간과 흙이 맺는 관계를 삶과 죽음의 고리를 매개로 탐구하기도 했다. 탄소 순환, 지렁이, 산악 농경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한편, 선생으로서는 ‘사람을 생각하는 과학자, 삶을 즐기는 연구자’를 모토로 파워포인트 대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는 수업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자연인 흙을 제대로 알리고자 개설한 학부강의 ‘세계 문화 속 땅과 사람들’로 2024년 우수 학부 강의상을 받았는데, 이 수업은 환경과학과 농학 전공자 외에도 예술 및 인문학도의 열띤 호응을 받고 있다. 2024년에는 독립영화인과 손을 잡고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흙의 숨: 진도 이야기〉에 직접 출연해 인간과 흙이 맺는 관계를 삶과 죽음의 고리를 매개로 탐구하기도 했다. 탄소 순환, 지렁이, 산악 농경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한편, 선생으로서는 ‘사람을 생각하는 과학자, 삶을 즐기는 연구자’를 모토로 파워포인트 대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는 수업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목차
추천사 머리말
1. 똥 - 먹고살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첫걸음 식구의 자세 | 사람의 똥오줌 | 두 갈래 길 | 가축의 똥오줌 | 진짜 똥, 가짜 똥 | 질소와 탄소 | 질소 곡예 | 질소 중독 | 풀을 뜯지 않는 가축 | 유기물을 잃은 흙 | 지구 그리고 인간과 사람
2. 화전 - 순환과 재생의 오래된 지혜 머리 사냥 | 화전이라는 이름 | 나갈랜드 | 줌 달력 | 나무와 뿌리가 하는 일 | 탄소, 질소, 인 | 후진성 비판에 대한 변론 | 인구와 화전의 위태로운 균형 | 줌을 향한 시선 | 화전도 혁신한다 | 건재한 화전
3. 쟁기 - 생명을 배신하지 않는 노동을 향하여 밭갈이라는 형벌 | 인류 보편 노동 | 농부의 무기 | 쟁기 기술의 혁신 | 쟁기와 가축이 이끈 사회 혁신 | 자유 소, 미툰 | 트랙터의 등장 | 마지막 풀 한 포기까지 | 홀리 그레일 | 살리는 노동
4. 논 - 무논에서 펼쳐지는 마법 쌀 | 무논이라는 마법 | 벼와 무논의 상승효과 | 논과 밭 그리고 한국 | 녹색혁명 이후의 논
5. 물 - 땅의 진화를 이해하는 열쇠 얼음 | 눈 | 물 | 비 | 탄소의 여행 | 암석에 갇힌 탄소 | 숲, 빙하의 최전선 | 지렁이 고치의 묘기 | 토양 온도와 순록 발자국 | 매머드 스텝 | 물의 변용
6. 강 - 우리가 다시 태어날 곳 두물머리 | 브도트 | 쌍둥이 도시 | 물레방아 | 매장된 강 | 증발과 모세관의 허연 흔적 | 소금밭이 된 땅 | 강 그리고 관개수로 |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7. 지렁이 - 그 많던 낙엽은 누가 다 먹었을까? 지렁이 사냥 | 침입 지렁이의 최전선 | 낚시와 정원 | 지렁이는 사람을 타고 | 극지로 간 지렁이 | 첫 정착민 | 팬데믹과 알래스카의 지렁이 | 아시아에서 온 침입자 | 밟으면 꿈틀한다
8. 흙의 몸 - 벗겨지고 갈리고 부서지는 흙의 몸 | 움직이는 하와이 | 흙의 나이 | 개울이 없는 섬 | 강의 고삐 | 창조적 파괴 | 풍상과 나이 | 간신히 존재할 뿐
9. 흙의 숨 - 인간의 숨, 흙의 숨, 그리고 기후변화 숨을 쉰다는 것 | 흙이 쉬는 숨 | 숨의 주체 | 반지름 6미터의 숲 | 탄소중립, 생명의 본질 | 흙의 숨, 지구의 숨
10. 땅 - 미래는 흙에서 과거와 닿는다 흙구덩이 안에서 | 할아버지의 무덤 | 백 년 동안의 고독 | 죽은 자의 땅 | 진도에서 만난 이야기꾼 | 땅을 나눈다는 것 | 버려지는 땅 | 아장목, 아이 장사 지내는 나무 | 흙을 대하는 태도 | 진도 사람이 되어부렀습니다
맺음말 주 도판 출처 찾아보기
1. 똥 - 먹고살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첫걸음 식구의 자세 | 사람의 똥오줌 | 두 갈래 길 | 가축의 똥오줌 | 진짜 똥, 가짜 똥 | 질소와 탄소 | 질소 곡예 | 질소 중독 | 풀을 뜯지 않는 가축 | 유기물을 잃은 흙 | 지구 그리고 인간과 사람
2. 화전 - 순환과 재생의 오래된 지혜 머리 사냥 | 화전이라는 이름 | 나갈랜드 | 줌 달력 | 나무와 뿌리가 하는 일 | 탄소, 질소, 인 | 후진성 비판에 대한 변론 | 인구와 화전의 위태로운 균형 | 줌을 향한 시선 | 화전도 혁신한다 | 건재한 화전
3. 쟁기 - 생명을 배신하지 않는 노동을 향하여 밭갈이라는 형벌 | 인류 보편 노동 | 농부의 무기 | 쟁기 기술의 혁신 | 쟁기와 가축이 이끈 사회 혁신 | 자유 소, 미툰 | 트랙터의 등장 | 마지막 풀 한 포기까지 | 홀리 그레일 | 살리는 노동
4. 논 - 무논에서 펼쳐지는 마법 쌀 | 무논이라는 마법 | 벼와 무논의 상승효과 | 논과 밭 그리고 한국 | 녹색혁명 이후의 논
5. 물 - 땅의 진화를 이해하는 열쇠 얼음 | 눈 | 물 | 비 | 탄소의 여행 | 암석에 갇힌 탄소 | 숲, 빙하의 최전선 | 지렁이 고치의 묘기 | 토양 온도와 순록 발자국 | 매머드 스텝 | 물의 변용
6. 강 - 우리가 다시 태어날 곳 두물머리 | 브도트 | 쌍둥이 도시 | 물레방아 | 매장된 강 | 증발과 모세관의 허연 흔적 | 소금밭이 된 땅 | 강 그리고 관개수로 |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7. 지렁이 - 그 많던 낙엽은 누가 다 먹었을까? 지렁이 사냥 | 침입 지렁이의 최전선 | 낚시와 정원 | 지렁이는 사람을 타고 | 극지로 간 지렁이 | 첫 정착민 | 팬데믹과 알래스카의 지렁이 | 아시아에서 온 침입자 | 밟으면 꿈틀한다
8. 흙의 몸 - 벗겨지고 갈리고 부서지는 흙의 몸 | 움직이는 하와이 | 흙의 나이 | 개울이 없는 섬 | 강의 고삐 | 창조적 파괴 | 풍상과 나이 | 간신히 존재할 뿐
9. 흙의 숨 - 인간의 숨, 흙의 숨, 그리고 기후변화 숨을 쉰다는 것 | 흙이 쉬는 숨 | 숨의 주체 | 반지름 6미터의 숲 | 탄소중립, 생명의 본질 | 흙의 숨, 지구의 숨
10. 땅 - 미래는 흙에서 과거와 닿는다 흙구덩이 안에서 | 할아버지의 무덤 | 백 년 동안의 고독 | 죽은 자의 땅 | 진도에서 만난 이야기꾼 | 땅을 나눈다는 것 | 버려지는 땅 | 아장목, 아이 장사 지내는 나무 | 흙을 대하는 태도 | 진도 사람이 되어부렀습니다
맺음말 주 도판 출처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지구의 살갗이자 생명의 보고, 노동의 터전이자 생의 종착지인
흙에 관한 생태학적이고 인문사회학적인 탐구 인류의 운명을 바꾼 거대한 이야기가 한 줌 흙 속에 있다!
★ 2024 미네소타대학교 우수강의 ★ 생태학자 김동길, 인류학자 조한혜정 추천!
《흙의 숨》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자연임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흙에 관한 탐구를 담은, 국내에서는 드문 교양서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 자리 잡고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토양학자 유경수 교수가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땅과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를 살피면서 오늘날의 농경, 토양생물학과 화학, 육지 경관의 변화, 기후 변화, 지속가능성의 문제 등을 다룬다. 화산 활동 및 물과 강을 통한 토양 생성, 풍화와 침식, 토양 호흡, 탄소와 질소의 순환, 질소와 인 같은 영양물질의 이동 등 흙의 과학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들을 인간의 문화와 함께 서술한 것이 특징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관개 방식부터 오늘의 올리브밭의 황폐한 실상까지, 인도 히말라야 나갈랜드의 화전부터 지금도 빠른 속도로 지형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화산섬의 풍경, 그리고 인간의 등에 업혀 극지까지 진출한 침입종 지렁이의 맹렬한 활동까지, 저자가 부지런히 발로 뛰며 발굴한 지구 곳곳 흙 속 놀라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전라남도 진도부터 북극권까지 하와이의 화산섬부터 인도 히말라야 기슭까지 직접 발로 뛰고 땅을 파며 완성한 토양생태학 대탐사!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 세계를 넘나드는 방대한 현장 조사다. 지금도 저자는 일 년에 수차례씩 답사와 탐사 여행을 떠나고, 답사지 중에는 인터넷도 되지 않는 오지가 포함되어 있다. 삽 들고 지칠 때까지 땅을 파 지층을 확인하고, 체임버를 설치해 토양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수시로 측정하고, 땅에 겨자물을 부어가며 지렁이를 채집한다. 천막을 치고 파리 모기와 싸워가며 야외에서 며칠씩 지내는 것도 다반사다. 저자는 ‘현장 우선’을 제1원칙으로 삼아, “오랜 시간 발품을 팔아 곳곳을 누비며 본 것들과 현지인들과 나눈 대화를 첫째가는 자료로” 삼았는데(24쪽), 이렇게 직접 파보고, 듣고 본 이야기를 담은 덕에, 그가 거의 매해 찾는 진도의 토지 사용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스웨덴과 알래스카에서 지렁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 올리브 밭의 토양 침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바로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추천사를 쓴 김동길 교수의 말처럼 “이 고된 탐사를 지켜보노라면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지만, 저자의 노고 덕분에 우리는 세계 곳곳의 흙을 눈으로 만져볼 수 있고, 그 속의 생태를 이해할 수 있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여러 다른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흙의 숨결을 느끼고 기록하는 생태학자가 들려주는 지구 곳곳의 흙과 거기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일반적인 과학책과 달리 사람들의 삶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긴 것도 주목할 만하다. 논문에 실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에서 지층처럼 쌓이고 쌓여 마침내 터져 나온 이야기들이다. 무엇보다도 편견 없이 현지 문화를 이해하려는 저자의 태도가 눈길을 끄는데, 가령 인도 나갈랜드의 화전을 다루는 대목(2장)에서는 이것이 후진성의 증거가 아니라, 인(燐)이 부족한 열대 환경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아마존과 콩고 등지의 대규모 벌채를 동반한 화전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소규모 전통화전을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해서도 안 된다는 것. 저자는 글로벌화된 세계의 주변부에서 오랜 세월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토착 농민의 기술적 성취에 경탄하며, 인간과 자연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상당한 수준의 학술적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따뜻한 시선과 현장감 있는 서술 덕분에 재미있는 여행기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책에는 저자의 동료 연구자, 가족, 연구지에서 만난 현지인들과의 만남의 기록이 빼곡하다.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을 자전거로 일주한 농생태학자 폴 포터 교수부터, 지렁이 채집을 함께한 스웨덴 사미족 마을의 일가, 이제는 거의 친족처럼 가까워진 진도의 농부들까지, 책에 기록된 무수한 인연들은 흙을 아교 삼아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유명할 것 없는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때로는 자기 고백적인 글들까지 과감하게 수록한 것은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야 흙이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저자의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15쪽).
똥과 화전, 쟁기, 그리고 무논의 마법까지 지구를 파괴하지 않고, 모두를 먹일 수 있는 길을 찾아서 책의 전반부에서는 농업과 문명의 뿌리를 되짚는 탐구를 소개한다. 1장(‘똥’)과 2장(‘화전’)에서는 토양 비옥도의 유지와 순환의 지혜를, 3장(‘쟁기’)에서는 중세 유럽 세계를 통째로 바꿔놓은 문맹 소작농의 기술 혁신을, 4장(‘논’)에서는 물과 흙의 결합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농경의 정수를 다룬다. 화학비료가 나오기 전 좋은 인분을 모으려던 상인들의 경쟁을 비롯해, 정사각형 모양의 켈트밭과 좁고 긴 중세 장원의 농지가 쟁기의 종류와 쟁기질 방식 때문에 그런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 논에 물을 채우고 써레질을 할 때 흙 속에서 일어나는 일 등, 농사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감탄을 자아내는 대목이 많다. 지구상의 80억 인구를 먹여 살릴 짐을 지고 있는 농업의 미래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질소 비료의 과다 사용에서 시급히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지, 무농약 혹은 무경운 농법이 어떤 숙제를 안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인간을 먹이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묵직한 질문을 가슴속에 품게 될 것이다.
그 많던 낙엽은 누가 다 먹었을까? 친환경의 아이콘 지렁이의 두 얼굴 저자는 ‘지렁이의 전세계적 확산(global worming)’과 이것이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데, 7장에서는 바로 이 내용이 소개된다. 20~30년 전, 미네소타의 주민들은 오랜 세월 땅을 덮고 있던 숲속 두꺼운 낙엽층이 사라지고 딱딱한 광물질의 흙바닥이 드러나 있는 현장을 발견한다. 미네소타대학교의 연구진이 투입되어 밝혀낸바, 낙엽을 먹어버린 장본인은 지렁이였다. 북미 대륙 북부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수천 년 동안 지렁이가 없는 곳이었는데, 어찌된 일일까? 최근 수십 년 사이, 낚시 미끼나 원예용 흙 따위와 함께 지렁이가 유입됐다. 문제는 지렁이가 낙엽과 유기물을 빠르게 분해한다는 것. 그 결과 낙엽층을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던 숲의 생태 구조가 붕괴하고, 땅속에 저장되어 있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돼 기후변화가 가속된다. 1년에 5~10미터, 지렁이가 퍼져나가는 속도에 맞추어 낙엽층이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저자는 발밑의 작은 생물이 얼마나 거대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실감한다. 이후 지렁이는 저자의 주요한 연구 대상 중 하나가 되는데, 저자가 스웨덴의 극지에 언제, 어떻게 지렁이가 들어왔는지를 직접 밝혀내는 과정은 한편의 추리극처럼 흥미진진하다. 비옥함과 친환경의 상징으로만 여겨졌던 지렁이가 어떤 땅에서는 칩입종이요 파괴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지렁이는 기후변화의 ‘와일드카드’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의외로 연약한 흙의 몸, 거칠어지고 가빠지는 흙의 숨 기후변화와 생태 위기의 시대, 공동의 집을 돌보려는 마음을 위하여 책의 후반부에서는 흙에 관한 사유를 한껏 확장시켜준다. 빙하가 무자비한 힘으로 깎아낸 계곡, 빙하가 녹아 사라진 탓에 솟아오른 해안 지형, 매머드 같은 대형 초식동물이 눈을 밟아 녹인 덕에 형성된 초지인 매머드 스텝, 평원의 범람원보다 높게 자리한 메소포타미아의 관개수로, 새로운 토양이 만들어지고 있는 화산섬 한복판의 극적인 현장... 시간적으로 수만 년에 걸쳐 있고 공간적으로도 극지와 사막, 열대 지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세계로 독자를 데려간다. 이 여정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지구의 흙이란 그 장엄한 모습만큼이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 자연의 풍화작용으로 끊임없이 무너져가며 인간의 토지 이용으로 인해 쉬 침식되고 변화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5장(‘물’)에서는 고체·액체·기체로 변하는 물의 변용과 그에 따른 토양의 변화를, 6장(‘강’)에서는 강과 땅, 그리고 인간 활동이 어떻게 서로를 빚어내며 공진화했는지를 보여준다. 물길을 따라 이동하는 흙, 그 위에 세워지고 무너지는 삶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흙·물·생명이 하나의 거대한 순환고리를 이룸을 알게 된다. 8장(‘흙의 몸’)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흙의 역사를, 9장(‘흙의 숨’)은 흙 속 생명체들의 호흡과 탄소 순환을 탐구한다. 흙은 매년 인류의 화석연료 배출량보다 10배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지만, 오랜 세월 탄소중립을 유지해왔다. 그러던 것이 무분별한 토지 이용과 대기 온도 상승으로 흙 속 유기물질의 분해 속도가 빨라지며 이 균형이 깨지고 있다. “거칠어지고 가빠지는 흙의 숨은 고장난 흙의 몸이 보내는 신호이자, 화석연료를 태워내는 산업문명이 일으키는 기후변화의 중요한 부분이다.”(21쪽) 흙에서 온 인간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토양학자 프랜시스 홀의 말처럼 우리는 잠깐 흙이 아닌 존재이며(107쪽), 그 시간 동안 흙 위에서 땀 흘려 노동하며 흙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를 헤쳐나갈 해답도 결국 우리의 생태계를 지탱하는 흙, 식량 생산의 원천인 흙, 거대한 숨을 쉬는 흙 속에 있으리라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메시지다. 그리고 그 해답의 실마리는 인간의 유일한 거처인 지구를 우리의 ‘공동의 집’으로 바라보고 가꾸려는 이들의 눈앞에 떠오를 것이다.
흙에 관한 생태학적이고 인문사회학적인 탐구 인류의 운명을 바꾼 거대한 이야기가 한 줌 흙 속에 있다!
★ 2024 미네소타대학교 우수강의 ★ 생태학자 김동길, 인류학자 조한혜정 추천!
《흙의 숨》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자연임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흙에 관한 탐구를 담은, 국내에서는 드문 교양서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 자리 잡고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토양학자 유경수 교수가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땅과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를 살피면서 오늘날의 농경, 토양생물학과 화학, 육지 경관의 변화, 기후 변화, 지속가능성의 문제 등을 다룬다. 화산 활동 및 물과 강을 통한 토양 생성, 풍화와 침식, 토양 호흡, 탄소와 질소의 순환, 질소와 인 같은 영양물질의 이동 등 흙의 과학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들을 인간의 문화와 함께 서술한 것이 특징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관개 방식부터 오늘의 올리브밭의 황폐한 실상까지, 인도 히말라야 나갈랜드의 화전부터 지금도 빠른 속도로 지형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화산섬의 풍경, 그리고 인간의 등에 업혀 극지까지 진출한 침입종 지렁이의 맹렬한 활동까지, 저자가 부지런히 발로 뛰며 발굴한 지구 곳곳 흙 속 놀라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전라남도 진도부터 북극권까지 하와이의 화산섬부터 인도 히말라야 기슭까지 직접 발로 뛰고 땅을 파며 완성한 토양생태학 대탐사!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 세계를 넘나드는 방대한 현장 조사다. 지금도 저자는 일 년에 수차례씩 답사와 탐사 여행을 떠나고, 답사지 중에는 인터넷도 되지 않는 오지가 포함되어 있다. 삽 들고 지칠 때까지 땅을 파 지층을 확인하고, 체임버를 설치해 토양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수시로 측정하고, 땅에 겨자물을 부어가며 지렁이를 채집한다. 천막을 치고 파리 모기와 싸워가며 야외에서 며칠씩 지내는 것도 다반사다. 저자는 ‘현장 우선’을 제1원칙으로 삼아, “오랜 시간 발품을 팔아 곳곳을 누비며 본 것들과 현지인들과 나눈 대화를 첫째가는 자료로” 삼았는데(24쪽), 이렇게 직접 파보고, 듣고 본 이야기를 담은 덕에, 그가 거의 매해 찾는 진도의 토지 사용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스웨덴과 알래스카에서 지렁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 올리브 밭의 토양 침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바로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추천사를 쓴 김동길 교수의 말처럼 “이 고된 탐사를 지켜보노라면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지만, 저자의 노고 덕분에 우리는 세계 곳곳의 흙을 눈으로 만져볼 수 있고, 그 속의 생태를 이해할 수 있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여러 다른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흙의 숨결을 느끼고 기록하는 생태학자가 들려주는 지구 곳곳의 흙과 거기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일반적인 과학책과 달리 사람들의 삶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긴 것도 주목할 만하다. 논문에 실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에서 지층처럼 쌓이고 쌓여 마침내 터져 나온 이야기들이다. 무엇보다도 편견 없이 현지 문화를 이해하려는 저자의 태도가 눈길을 끄는데, 가령 인도 나갈랜드의 화전을 다루는 대목(2장)에서는 이것이 후진성의 증거가 아니라, 인(燐)이 부족한 열대 환경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아마존과 콩고 등지의 대규모 벌채를 동반한 화전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소규모 전통화전을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해서도 안 된다는 것. 저자는 글로벌화된 세계의 주변부에서 오랜 세월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토착 농민의 기술적 성취에 경탄하며, 인간과 자연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상당한 수준의 학술적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따뜻한 시선과 현장감 있는 서술 덕분에 재미있는 여행기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책에는 저자의 동료 연구자, 가족, 연구지에서 만난 현지인들과의 만남의 기록이 빼곡하다.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을 자전거로 일주한 농생태학자 폴 포터 교수부터, 지렁이 채집을 함께한 스웨덴 사미족 마을의 일가, 이제는 거의 친족처럼 가까워진 진도의 농부들까지, 책에 기록된 무수한 인연들은 흙을 아교 삼아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유명할 것 없는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때로는 자기 고백적인 글들까지 과감하게 수록한 것은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야 흙이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저자의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15쪽).
똥과 화전, 쟁기, 그리고 무논의 마법까지 지구를 파괴하지 않고, 모두를 먹일 수 있는 길을 찾아서 책의 전반부에서는 농업과 문명의 뿌리를 되짚는 탐구를 소개한다. 1장(‘똥’)과 2장(‘화전’)에서는 토양 비옥도의 유지와 순환의 지혜를, 3장(‘쟁기’)에서는 중세 유럽 세계를 통째로 바꿔놓은 문맹 소작농의 기술 혁신을, 4장(‘논’)에서는 물과 흙의 결합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농경의 정수를 다룬다. 화학비료가 나오기 전 좋은 인분을 모으려던 상인들의 경쟁을 비롯해, 정사각형 모양의 켈트밭과 좁고 긴 중세 장원의 농지가 쟁기의 종류와 쟁기질 방식 때문에 그런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 논에 물을 채우고 써레질을 할 때 흙 속에서 일어나는 일 등, 농사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감탄을 자아내는 대목이 많다. 지구상의 80억 인구를 먹여 살릴 짐을 지고 있는 농업의 미래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질소 비료의 과다 사용에서 시급히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지, 무농약 혹은 무경운 농법이 어떤 숙제를 안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인간을 먹이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묵직한 질문을 가슴속에 품게 될 것이다.
그 많던 낙엽은 누가 다 먹었을까? 친환경의 아이콘 지렁이의 두 얼굴 저자는 ‘지렁이의 전세계적 확산(global worming)’과 이것이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데, 7장에서는 바로 이 내용이 소개된다. 20~30년 전, 미네소타의 주민들은 오랜 세월 땅을 덮고 있던 숲속 두꺼운 낙엽층이 사라지고 딱딱한 광물질의 흙바닥이 드러나 있는 현장을 발견한다. 미네소타대학교의 연구진이 투입되어 밝혀낸바, 낙엽을 먹어버린 장본인은 지렁이였다. 북미 대륙 북부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수천 년 동안 지렁이가 없는 곳이었는데, 어찌된 일일까? 최근 수십 년 사이, 낚시 미끼나 원예용 흙 따위와 함께 지렁이가 유입됐다. 문제는 지렁이가 낙엽과 유기물을 빠르게 분해한다는 것. 그 결과 낙엽층을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던 숲의 생태 구조가 붕괴하고, 땅속에 저장되어 있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돼 기후변화가 가속된다. 1년에 5~10미터, 지렁이가 퍼져나가는 속도에 맞추어 낙엽층이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저자는 발밑의 작은 생물이 얼마나 거대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실감한다. 이후 지렁이는 저자의 주요한 연구 대상 중 하나가 되는데, 저자가 스웨덴의 극지에 언제, 어떻게 지렁이가 들어왔는지를 직접 밝혀내는 과정은 한편의 추리극처럼 흥미진진하다. 비옥함과 친환경의 상징으로만 여겨졌던 지렁이가 어떤 땅에서는 칩입종이요 파괴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지렁이는 기후변화의 ‘와일드카드’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의외로 연약한 흙의 몸, 거칠어지고 가빠지는 흙의 숨 기후변화와 생태 위기의 시대, 공동의 집을 돌보려는 마음을 위하여 책의 후반부에서는 흙에 관한 사유를 한껏 확장시켜준다. 빙하가 무자비한 힘으로 깎아낸 계곡, 빙하가 녹아 사라진 탓에 솟아오른 해안 지형, 매머드 같은 대형 초식동물이 눈을 밟아 녹인 덕에 형성된 초지인 매머드 스텝, 평원의 범람원보다 높게 자리한 메소포타미아의 관개수로, 새로운 토양이 만들어지고 있는 화산섬 한복판의 극적인 현장... 시간적으로 수만 년에 걸쳐 있고 공간적으로도 극지와 사막, 열대 지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세계로 독자를 데려간다. 이 여정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지구의 흙이란 그 장엄한 모습만큼이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 자연의 풍화작용으로 끊임없이 무너져가며 인간의 토지 이용으로 인해 쉬 침식되고 변화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5장(‘물’)에서는 고체·액체·기체로 변하는 물의 변용과 그에 따른 토양의 변화를, 6장(‘강’)에서는 강과 땅, 그리고 인간 활동이 어떻게 서로를 빚어내며 공진화했는지를 보여준다. 물길을 따라 이동하는 흙, 그 위에 세워지고 무너지는 삶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흙·물·생명이 하나의 거대한 순환고리를 이룸을 알게 된다. 8장(‘흙의 몸’)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흙의 역사를, 9장(‘흙의 숨’)은 흙 속 생명체들의 호흡과 탄소 순환을 탐구한다. 흙은 매년 인류의 화석연료 배출량보다 10배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지만, 오랜 세월 탄소중립을 유지해왔다. 그러던 것이 무분별한 토지 이용과 대기 온도 상승으로 흙 속 유기물질의 분해 속도가 빨라지며 이 균형이 깨지고 있다. “거칠어지고 가빠지는 흙의 숨은 고장난 흙의 몸이 보내는 신호이자, 화석연료를 태워내는 산업문명이 일으키는 기후변화의 중요한 부분이다.”(21쪽) 흙에서 온 인간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토양학자 프랜시스 홀의 말처럼 우리는 잠깐 흙이 아닌 존재이며(107쪽), 그 시간 동안 흙 위에서 땀 흘려 노동하며 흙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를 헤쳐나갈 해답도 결국 우리의 생태계를 지탱하는 흙, 식량 생산의 원천인 흙, 거대한 숨을 쉬는 흙 속에 있으리라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메시지다. 그리고 그 해답의 실마리는 인간의 유일한 거처인 지구를 우리의 ‘공동의 집’으로 바라보고 가꾸려는 이들의 눈앞에 떠오를 것이다.
책속으로
16세기 중국에는 도시의 똥을 수집하는 조합 또는 길드가 조직되기도 했다. (...) 도쿠가와 시대의 에도와 오사카에서는 임대인이 건물에서 나오는 똥의 소유권을 가졌다면, 세입자에게는 오줌을 팔 권리가 있었다. 건물주는 세입자의 똥을 팔아 나올 소득을 고려해 월세를 매겼고, 때맞춰 찾아오는 똥 수집가에게 모아둔 똥을 팔았다. 똥 수집가는 도시에서 똥을 구입해 농촌에서 판매하는 거래꾼이었다. 자원으로서 똥은 자본주의적인 돈의 순환과 잘 어울렸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가는 사람의 똥오줌은 아시아에서 식량 해결책이었을 뿐만 아니라, 급격하게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의 공공 위생을 유지하는 길이기도 했다. _37-38쪽
육지 생태계에서 질소는 귀한 존재이다. 온대 생태계의 90퍼센트, 열대 생태계의 절반 가까이가 질소 제약 아래 놓여 있다. 질소만 땅에 투입하면 식물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인이나 칼륨 같은 다른 양분을 넣어도 생산량에 별 증가가 없다가 딴 것 하나 없이 질소만 넣으면 벌떡 반응하는 것이 질소 제약을 받는 생태계의 특징이다. _46쪽
퇴비를 만드는 것은 간단히 말해 탄소와 질소의 비율을 맞추는 과정이다. 흔히 퇴비를 만들 원료의 바람직한 탄소 대 질소 비를 30 대 1 정도라고 본다. 탄소가 30단위보다 낮으면 질소 과잉 상태가 되어 악취 나는 암모니아가 나오고, 30보다 높으면 앞서 말한 볏짚처럼 아주 느리게 썩는다. 흙에 뿌리면 최적의 비료가 되는 퇴비 완성품의 탄소 대 질소 비는 10~15 대 1이다. 똥의 최강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_49쪽
질소는 대기 분자의 78퍼센트를 차지한다. 양으로 따지면 지구 대기권에 4000조(3.9×10^15)톤의 질소가 둥둥 떠다니는 것이니, 발바닥만 땅에 붙이고 걷는 우리의 몸은 질소 바다를 헤집고 다니는 셈이다. _51쪽
유기물 하나 없는 황무지 같은 황토에서 상추와 고추가 짙은 초록색으로 쑥쑥 잘 자라는 게 달리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 질소비료를 가장 많이 주는 나라 중 하나다. 2021년 헥타르당 137킬로그램의 질소비료를 퍼부었다. _59쪽
가차 없이 풍화와 침식이 일어나는 나갈랜드의 산악지역에도 흙이 남아 있는 까닭은 뿌리가 흙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흙이 있어 뿌리가 있는 것만큼, 뿌리가 있어 흙도 있는 것이다. 뿌리의 집요함이 없다면 열대의 나무들은 따뜻하고 물이 넘치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잠재력을 맘껏 누리지 못할 것이다. _83쪽
2014년 서울에서 평양과학기술대학 김필주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북한 식량 문제 해결에 인생을 바친 농학자인 그에게 나는 북한의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기계 하나가 필요하다면 무엇이겠냐고 물었다. “암석 분쇄기입니다.”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북한의 토양 산성화가 심각해 석회를 뿌려야 하니 석회암 분쇄기가 필요하죠.” _87쪽
흙은 인간의 시작이자 끝이다. 위스콘신대학교의 토양학자 프랜시스 홀(1913~2002)의 말처럼, “우리는 잠깐 흙이 아닐 뿐이다”. 〈창세기〉는 그 ‘잠깐’조차 흙은 노동의 터전이라 말한다. 흙을 파괴하는 것은 본향을 죽이는 일이자 돌아갈 곳을 없애는 일임에도, 생계를 유지하려면 흙을 갈아 엎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쟁기는 먹고살기 위해 하는 노동이 인간을 배신하는 아이러니의 중심에 있다. _107쪽
녹색혁명은 수많은 사람을 기아에서 건져냄과 동시에 인구 증가와 환경파괴 문제를 만들어냈다. 그 연장선에서, 보존농업은 토양의 피복을 보호하고 생물다양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농법의 대전환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쟁기 문제만큼은 제초제 문제로 바꿔놓은 것에 머물렀다. 대안인 유기농은 현대 농업 기술이 만들어낸 화학비료와 농약을 거부하고 생태 시스템의 이해를 통해 농업 생산력을 늘리는 오랜 전통을 이어나가지만, 여전히 쟁기 문제를 안고 있다. 쟁기의 자리에는 아직도 혁신이 절실하다. _133쪽
벼는 상황에 따라 습지식물로 변모하는 특이한 생리를 가지고 있다. 즉 물에 잠기는지 여부에 따라 통기조직이 생기기도 하고 생기지 않기도 한다. 물에 푹 잠긴 토양에서 뿌리를 뻗고 자랄 수 있는 주요 곡물은 오로지 벼뿐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식물-흔히 잡초라고 부르는-이 물을 채운 논에서 질식할 때, 벼는 스노클을 입에 문다. 따라서 논에 물을 채워 땅을 잠기게 하는 것은, 벼에 물을 주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잡초를 제거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_147쪽
논흙은 밭흙에 비해 같은 양의 생물이 죽어 묻히더라도 유기물 함량이 높다. 농부가 축조한 인공 습지가 유기물질의 분해 속도를 늦춤으로써 토양 유기물질의 함량을 높이는 한편 써레질과 쟁기질은 잡초 또는 논물에 사는 생명체의 잔재까지 혐기성의 흙 속으로 강제로 집어넣어 유기물질 함량을 더욱 높이는 효과를 낳는다. _156쪽
즉 논에 물을 채우는 것은 작물 재배의 귀결인 토양 산성화를 막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논과 밭이라는 2개의 선택지를 가진 동아시아 또는 한국의 농부라면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일까? 재난에 대한 저항성을 보거나 자손들에 남겨줄 지속가능성을 보거나, 할 수만 있다면 논을 택할 것이다. 높은 인구밀도와 집적화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논농사가 토양 비옥도를 고갈하지 않고 수천 년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벼를 밭이 아닌 물을 채운 논에서 재배한 덕분이고, 벼라는 식물이 가진 생리적 특성과 무논을 유기체적 시스템으로 통합한 덕분이다. _159쪽
조교수 생활이 지긋지긋해지면 강가를 걷던 2008년, 나의 산책길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논문이 나왔다. 밥 월터와 도로시 메리츠가 폭포선 주변 강들의 양쪽을 막고 있는 강둑이 자연산이 아니라 물방아 댐의 산물이라는 과격한 주장을 한 것이다. 지금 피드몬트의 강이 그 모양인 건 유럽 정착민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_225-226쪽
지렁이가 백인과 함께 들어왔다면, 오지브웨 사람들은 지렁이를 뭐라고 부를까? 빙하를 겪은 오대호를 중심으로 살던 오지브웨어 사용자들은 지렁이를 본 적도 없었을 테니 이들에게는 ‘지렁이’라는 말 또한 없지 않았을까? 오지브웨 언어 또한 지렁이가 백인을 따라왔음을 반영할까? 미네소타대학교 아메리칸 인디언학과의 오지브웨 언어 연구자인 존 니콜스 교수를 찾아갔다. “아! 그랬군요. 지렁이가 외래종이었군요. 이제 모든 게 이해가 돼요. 오지브웨 말에 지렁이를 칭하는 단어가 없는 것이 늘 의아했어요.” 가령 캐나다 국경에서 인터뷰한 오지브웨어 사용자가 “길게 꼬인 애벌레”(오지브웨 말을 영어로 음차하면 moose gaa-ginwaabiigizid)라는 긴 구절로 지렁이를 가리키더라고 했다. _279-280쪽
지렁이 찬가를 부르는 사람들의 반대편에서 나는 지렁이 공부를 해왔다. 지렁이가 밭에서 구멍을 내 흙을 느슨하게 만들고 물과 공기가 흐르도록 한다고 할 때, 난 반대의 현상을 목격했다. 지렁이의 침입과 함께 미네소타, 알래스카, 스웨덴 숲의 흙은 솜처럼 푹신하고 물과 공기가 잘 빠지는 구조에서 광물질의 단단하고 압축된 구조로 변모했다. 지렁이가 유기물과 영양분의 순환을 도와 작물의 성장을 돕는다고 할 때, 나는 옛 빙하지대의 숲에서 지렁이의 침입으로 수백 년 쌓여온 영양분이 몇 해 만에 손실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기록했다. 지렁이가 비옥한 흙을 가꾸어낸다고 할 때, 나는 침입 지렁이로 삶의 터전을 잃는 토종 식물과 동물을 보았다. 지렁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흙을 살리고 쓰레기를 줄이자는 주장을 들을 때, 나는 지렁이들이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하는 일만을 잘하기를 바랐다. _283쪽
500만 살! 하와이에서 이보다 더 나이 먹은 흙을 찾을 수는 없다. 노력하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뜻이 아니다. 카우아이 너머의 섬들은 500만 년 이상 지속된 침하와 침식에 몸을 내주고 이내 물속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에 지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 흙을 삶과 죽음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배우라고 상상한다면, 섬은 곧 무대다. 배우도 등장하고 사라질 때가 있듯, 무대 또한 그러할 뿐이다. _302쪽
빅아일랜드에서 보는 새 흙, 새 땅거죽의 탄생 모습은 극적이다. 지각에 구멍이 뚫리고, 붉은 용암이 흐르고, 불붙은 화산재가 날고, 숲에 불이 붙고, 동물과 사람이 도망치고, 하늘도 잿빛으로 변해야 새 땅거죽이 만들어진다. 격렬한 탄생의 과정을 견뎌낸 흙은 약한 몸을 가지려야 가질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흙의 몸은, 불변하고 안정적일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간신히 존재할 뿐이다. 화산섬에서 흙이란 마그마에서 만들어진 용암이 땅거죽이라는 열역학 지옥에 떨어진 결과의 산물이다. 흙의 유기물 또한 대기의 이산화탄소와 땅속의 물이 태양에너지로 잠시 묶여 있는 불안정한 상태다. 갖가지 풍상에 흙의 몸은 지금도 열역학적 평형 상태를 향해 부단히 분해되는 중이다. _317쪽
토양 호흡은 커다란 숨이다.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태워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2023년을 기준으로 368억 톤이다. 흙이 해마다 뱉어내는 이산화탄소는 그것의 대충 열 배에 달한다. 그럼에도 인류가 화석연료를 태우기 시작할 때까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난 80만 년 동안 300피피엠을 넘지 않았다. 지구 규모에서 흙이 탄소중립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흙이 탄소중립에 있다는 말은 흙의 숨이 뱉어내는 이산화탄소의 양만큼 광합성으로 생산된 유기물의 탄소가 식물과 동물의 죽은 몸을 통해 흙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지구의 긴 역사 동안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안정되었던 이유는 흙과 식물을 포함한 육지 생태계가 탄소중립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지구의 70퍼센트를 둘러싼 바다 또한 탄소중립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_338-340쪽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는 계절을 탄다. 그 이유가 되는 셋은 북반구에 쏠려 있는 육지, 식물 광합성, 그리고 토양 호흡이다. (...) 여름과 겨울의 이산화탄소 농도 차이는 하와이의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5~7피피엠이다. 이 아름답고 멋진 지구의 숨이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해마다 증가한다는 재난 뉴스에 가려 빛을 못 본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_344쪽
상만리 마을에서 바라보는 아장목은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존재를 맘껏 드러내고 있었다. 이 우아한 소나무는 주변의 고르게 자라 있는 나무들보다 적어도 한 키가 더 컸다. 아장목을 중심으로 한 반경 20~30미터의 공간에는 같은 키로 촘촘히 자란 주위의 작은 나무들이 아장목의 위세에 눌려 있는 듯 보였다. _375쪽
육지 생태계에서 질소는 귀한 존재이다. 온대 생태계의 90퍼센트, 열대 생태계의 절반 가까이가 질소 제약 아래 놓여 있다. 질소만 땅에 투입하면 식물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인이나 칼륨 같은 다른 양분을 넣어도 생산량에 별 증가가 없다가 딴 것 하나 없이 질소만 넣으면 벌떡 반응하는 것이 질소 제약을 받는 생태계의 특징이다. _46쪽
퇴비를 만드는 것은 간단히 말해 탄소와 질소의 비율을 맞추는 과정이다. 흔히 퇴비를 만들 원료의 바람직한 탄소 대 질소 비를 30 대 1 정도라고 본다. 탄소가 30단위보다 낮으면 질소 과잉 상태가 되어 악취 나는 암모니아가 나오고, 30보다 높으면 앞서 말한 볏짚처럼 아주 느리게 썩는다. 흙에 뿌리면 최적의 비료가 되는 퇴비 완성품의 탄소 대 질소 비는 10~15 대 1이다. 똥의 최강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_49쪽
질소는 대기 분자의 78퍼센트를 차지한다. 양으로 따지면 지구 대기권에 4000조(3.9×10^15)톤의 질소가 둥둥 떠다니는 것이니, 발바닥만 땅에 붙이고 걷는 우리의 몸은 질소 바다를 헤집고 다니는 셈이다. _51쪽
유기물 하나 없는 황무지 같은 황토에서 상추와 고추가 짙은 초록색으로 쑥쑥 잘 자라는 게 달리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 질소비료를 가장 많이 주는 나라 중 하나다. 2021년 헥타르당 137킬로그램의 질소비료를 퍼부었다. _59쪽
가차 없이 풍화와 침식이 일어나는 나갈랜드의 산악지역에도 흙이 남아 있는 까닭은 뿌리가 흙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흙이 있어 뿌리가 있는 것만큼, 뿌리가 있어 흙도 있는 것이다. 뿌리의 집요함이 없다면 열대의 나무들은 따뜻하고 물이 넘치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잠재력을 맘껏 누리지 못할 것이다. _83쪽
2014년 서울에서 평양과학기술대학 김필주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북한 식량 문제 해결에 인생을 바친 농학자인 그에게 나는 북한의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기계 하나가 필요하다면 무엇이겠냐고 물었다. “암석 분쇄기입니다.”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북한의 토양 산성화가 심각해 석회를 뿌려야 하니 석회암 분쇄기가 필요하죠.” _87쪽
흙은 인간의 시작이자 끝이다. 위스콘신대학교의 토양학자 프랜시스 홀(1913~2002)의 말처럼, “우리는 잠깐 흙이 아닐 뿐이다”. 〈창세기〉는 그 ‘잠깐’조차 흙은 노동의 터전이라 말한다. 흙을 파괴하는 것은 본향을 죽이는 일이자 돌아갈 곳을 없애는 일임에도, 생계를 유지하려면 흙을 갈아 엎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쟁기는 먹고살기 위해 하는 노동이 인간을 배신하는 아이러니의 중심에 있다. _107쪽
녹색혁명은 수많은 사람을 기아에서 건져냄과 동시에 인구 증가와 환경파괴 문제를 만들어냈다. 그 연장선에서, 보존농업은 토양의 피복을 보호하고 생물다양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농법의 대전환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쟁기 문제만큼은 제초제 문제로 바꿔놓은 것에 머물렀다. 대안인 유기농은 현대 농업 기술이 만들어낸 화학비료와 농약을 거부하고 생태 시스템의 이해를 통해 농업 생산력을 늘리는 오랜 전통을 이어나가지만, 여전히 쟁기 문제를 안고 있다. 쟁기의 자리에는 아직도 혁신이 절실하다. _133쪽
벼는 상황에 따라 습지식물로 변모하는 특이한 생리를 가지고 있다. 즉 물에 잠기는지 여부에 따라 통기조직이 생기기도 하고 생기지 않기도 한다. 물에 푹 잠긴 토양에서 뿌리를 뻗고 자랄 수 있는 주요 곡물은 오로지 벼뿐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식물-흔히 잡초라고 부르는-이 물을 채운 논에서 질식할 때, 벼는 스노클을 입에 문다. 따라서 논에 물을 채워 땅을 잠기게 하는 것은, 벼에 물을 주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잡초를 제거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_147쪽
논흙은 밭흙에 비해 같은 양의 생물이 죽어 묻히더라도 유기물 함량이 높다. 농부가 축조한 인공 습지가 유기물질의 분해 속도를 늦춤으로써 토양 유기물질의 함량을 높이는 한편 써레질과 쟁기질은 잡초 또는 논물에 사는 생명체의 잔재까지 혐기성의 흙 속으로 강제로 집어넣어 유기물질 함량을 더욱 높이는 효과를 낳는다. _156쪽
즉 논에 물을 채우는 것은 작물 재배의 귀결인 토양 산성화를 막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논과 밭이라는 2개의 선택지를 가진 동아시아 또는 한국의 농부라면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일까? 재난에 대한 저항성을 보거나 자손들에 남겨줄 지속가능성을 보거나, 할 수만 있다면 논을 택할 것이다. 높은 인구밀도와 집적화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논농사가 토양 비옥도를 고갈하지 않고 수천 년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벼를 밭이 아닌 물을 채운 논에서 재배한 덕분이고, 벼라는 식물이 가진 생리적 특성과 무논을 유기체적 시스템으로 통합한 덕분이다. _159쪽
조교수 생활이 지긋지긋해지면 강가를 걷던 2008년, 나의 산책길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논문이 나왔다. 밥 월터와 도로시 메리츠가 폭포선 주변 강들의 양쪽을 막고 있는 강둑이 자연산이 아니라 물방아 댐의 산물이라는 과격한 주장을 한 것이다. 지금 피드몬트의 강이 그 모양인 건 유럽 정착민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_225-226쪽
지렁이가 백인과 함께 들어왔다면, 오지브웨 사람들은 지렁이를 뭐라고 부를까? 빙하를 겪은 오대호를 중심으로 살던 오지브웨어 사용자들은 지렁이를 본 적도 없었을 테니 이들에게는 ‘지렁이’라는 말 또한 없지 않았을까? 오지브웨 언어 또한 지렁이가 백인을 따라왔음을 반영할까? 미네소타대학교 아메리칸 인디언학과의 오지브웨 언어 연구자인 존 니콜스 교수를 찾아갔다. “아! 그랬군요. 지렁이가 외래종이었군요. 이제 모든 게 이해가 돼요. 오지브웨 말에 지렁이를 칭하는 단어가 없는 것이 늘 의아했어요.” 가령 캐나다 국경에서 인터뷰한 오지브웨어 사용자가 “길게 꼬인 애벌레”(오지브웨 말을 영어로 음차하면 moose gaa-ginwaabiigizid)라는 긴 구절로 지렁이를 가리키더라고 했다. _279-280쪽
지렁이 찬가를 부르는 사람들의 반대편에서 나는 지렁이 공부를 해왔다. 지렁이가 밭에서 구멍을 내 흙을 느슨하게 만들고 물과 공기가 흐르도록 한다고 할 때, 난 반대의 현상을 목격했다. 지렁이의 침입과 함께 미네소타, 알래스카, 스웨덴 숲의 흙은 솜처럼 푹신하고 물과 공기가 잘 빠지는 구조에서 광물질의 단단하고 압축된 구조로 변모했다. 지렁이가 유기물과 영양분의 순환을 도와 작물의 성장을 돕는다고 할 때, 나는 옛 빙하지대의 숲에서 지렁이의 침입으로 수백 년 쌓여온 영양분이 몇 해 만에 손실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기록했다. 지렁이가 비옥한 흙을 가꾸어낸다고 할 때, 나는 침입 지렁이로 삶의 터전을 잃는 토종 식물과 동물을 보았다. 지렁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흙을 살리고 쓰레기를 줄이자는 주장을 들을 때, 나는 지렁이들이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하는 일만을 잘하기를 바랐다. _283쪽
500만 살! 하와이에서 이보다 더 나이 먹은 흙을 찾을 수는 없다. 노력하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뜻이 아니다. 카우아이 너머의 섬들은 500만 년 이상 지속된 침하와 침식에 몸을 내주고 이내 물속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에 지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 흙을 삶과 죽음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배우라고 상상한다면, 섬은 곧 무대다. 배우도 등장하고 사라질 때가 있듯, 무대 또한 그러할 뿐이다. _302쪽
빅아일랜드에서 보는 새 흙, 새 땅거죽의 탄생 모습은 극적이다. 지각에 구멍이 뚫리고, 붉은 용암이 흐르고, 불붙은 화산재가 날고, 숲에 불이 붙고, 동물과 사람이 도망치고, 하늘도 잿빛으로 변해야 새 땅거죽이 만들어진다. 격렬한 탄생의 과정을 견뎌낸 흙은 약한 몸을 가지려야 가질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흙의 몸은, 불변하고 안정적일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간신히 존재할 뿐이다. 화산섬에서 흙이란 마그마에서 만들어진 용암이 땅거죽이라는 열역학 지옥에 떨어진 결과의 산물이다. 흙의 유기물 또한 대기의 이산화탄소와 땅속의 물이 태양에너지로 잠시 묶여 있는 불안정한 상태다. 갖가지 풍상에 흙의 몸은 지금도 열역학적 평형 상태를 향해 부단히 분해되는 중이다. _317쪽
토양 호흡은 커다란 숨이다.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태워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2023년을 기준으로 368억 톤이다. 흙이 해마다 뱉어내는 이산화탄소는 그것의 대충 열 배에 달한다. 그럼에도 인류가 화석연료를 태우기 시작할 때까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난 80만 년 동안 300피피엠을 넘지 않았다. 지구 규모에서 흙이 탄소중립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흙이 탄소중립에 있다는 말은 흙의 숨이 뱉어내는 이산화탄소의 양만큼 광합성으로 생산된 유기물의 탄소가 식물과 동물의 죽은 몸을 통해 흙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지구의 긴 역사 동안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안정되었던 이유는 흙과 식물을 포함한 육지 생태계가 탄소중립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지구의 70퍼센트를 둘러싼 바다 또한 탄소중립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_338-340쪽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는 계절을 탄다. 그 이유가 되는 셋은 북반구에 쏠려 있는 육지, 식물 광합성, 그리고 토양 호흡이다. (...) 여름과 겨울의 이산화탄소 농도 차이는 하와이의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5~7피피엠이다. 이 아름답고 멋진 지구의 숨이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해마다 증가한다는 재난 뉴스에 가려 빛을 못 본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_344쪽
상만리 마을에서 바라보는 아장목은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존재를 맘껏 드러내고 있었다. 이 우아한 소나무는 주변의 고르게 자라 있는 나무들보다 적어도 한 키가 더 컸다. 아장목을 중심으로 한 반경 20~30미터의 공간에는 같은 키로 촘촘히 자란 주위의 작은 나무들이 아장목의 위세에 눌려 있는 듯 보였다. _375쪽
